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떠러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서름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날 그 하로 무덥던 날
떠러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으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기둘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이 시는 남달리 좋아 했던 모란을 소재로 하여 이 지상에 피어나는 아름다움의 짧음과 그로 인한 비애를 다루고 있다. 이 시에서 모란은 여러 가지 꽃 중의 하나이면서 지상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있다면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는 것일 게다. 이 시에는 비록 그것이 나에게 슬픔을 줄망정 그 꿈을 버리지 않겠다는 집념과 의지가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아즉 기둘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에서 찬란한 슬픔의 봄이란 무엇일까? 이것은 피어날 모란의 아름다움에의 (찬란한) 환희, 그리고 곧 소멸하게 될 꽃으로 인한 슬픔이 한 데 섞인 심경을 잘 나타내 준다. 시적 자아는 이 땅위의 세계에서 순간적인 아름다움이 슬프지만 사랑하고 있다.
정성들여 가꾼 모란, 그것들이 피기를 기다리는 '오월', 화자가 기다리고 또 보내기를 꺼려하는 '봄'의 상징적 의미는 무엇일까? '오월'이 가면 또다시 그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봄'은 시인이 시대 배경을 염두에 두고 노래 부른 것인가? 지식인들이 겪어야 했던 실의와 좌절감에서 벗어나 보람과 이상이 꽃피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일까? 화자가 기다리는 '봄'의 의미를 앞에서 말한 것만으로 한정할 수 없다면 그럼 어디까지 포용할 수 있는가? 자아에서 큰 이상과 가치의 세계로까지 확대되는 보람과 최고 목적이 '봄'에 포용될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며 음미해 보자.
1930년대 시문학파(순수시파)의 대표적 시인인 영랑은 경향파의 목적시를 거부하고 문학의 순수성을 옹호하였다. 아름다운 시어, 감미로운 서정, 여성적인 섬세함과 부드러움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 시문학파 순수시의 특징 :
① 정서의 순화 ② 언어의 조탁 ③ 미묘한 음악성
▶ 성격 : 낭만적, 유미적, 상징적
▶ 어조 : 여성적 어조
▶ 표현 :
① 역설적 표현
② '북(北)의 소월, 남(南)의 영랑'으로 일컬어지듯이 북도의 투박한
사투리로 씌어진 소월의 독특한 가락과는 대조적으로 이 시는 나긋
나긋하고 감칠맛 나는 남도 방언이 토대를 이루고 있다. 이렇듯 나
긋나긋한 전라도 방언이 시어로 쓰인 것은 영랑에 의해 처음으로
시도되었으며, 이는 영랑 시의 본령을 이루고 있다.
▶ 구성 :
① 모란이 피기를 기다림(1-2행)
② 모란을 잃은 슬픔(3-10행)
③ 모란이 피기를 기다림(11-12행)
▶ 제재 : 모란의 개화
▶ 주제 :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림
이 시는 영랑이 남달리 좋아하던 모란을 소재로 하여 한시적(限時的)인 아름다움의 소멸을 바라보는 시적 자아의 비애감을 표현한 작품으로, '모란'은 실재하는 자연의 꽃인 동시에 지 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대유적 기능의 꽃이다.
연 구분이 없는 이 시는 작품 속에 전개되는 시간의 추이로 보아 네 단락으로 나눌 수 있 다. 현재인 첫째 단락은 1∼2행이며, 미래인 둘째 단락은 3∼4행, 과거인 셋째 단락은 5∼10 행, 현재의 넷째 단락은 11∼12행으로 첫째 단락의 반복이다. 첫째 단락에서 시적 화자는 모 란이 필 그의 봄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둘째 단락에 이르면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모란 이 떨어져 다시 슬픔에 잠기게 될 것을 예견하고 있으며, 셋째 단락은 그가 설움에 잠기게 될 미래의 상황을 증명해 줄 뿐 아니라, 그가 갖고 있는 삶의 구도를 명확하게 보여 준다. 오직 모란이 피어 있는 순간에만 삶의 보람을 느끼는 시적 화자에게 있어서 모란은 봄과 등 가적(等價的) 가치로 그의 소망을 표상한다. 그가 추구하는 소망 세계가 무엇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그것이 모란으로 대유된 어떤 절대적 가치의 미(美)라고 한다면, 시적 화자는 모란 이 피어 있을 때는 자신의 소망이 성취된 것으로 생각하여 보람을 느끼다가, 모란이 지고 말았을 때는 봄을 여읜 보람을 상실한 허탈감에 빠져, 마치 한 해가 다 지나버린 것으로 생각하는 감상적 유미주의자임을 알 수 있다. 화자의 한 해는 '모란이 피어 있는 날'과 '모란 이 피기를 기다리는 날'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9·10행에서 볼 수 있듯이 모란이 피어 있 는 날을 제외한 그의 나날은 '하냥 섭섭해 우는' 서러움의 연속이다. 그러므로 넷째 단락에 이르러 화자는 모란이 피는 날을 계속 기다리고 있겠다는 심경을 토로하면서 자신이 기다리 는 봄이 다만 '슬픔의 봄'이 아닌, '찬란한 슬픔의 봄'임을 시인하게 된다. '찬란한 슬픔의 봄' 이 '찬란한 봄'이라는 의미보다 '슬픔의 봄'이 강조된 표현이라면, 표면적으로는 화자가 모란 이 피기를 기다리는 기대와 희망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모란을 잃 은 설움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란에 자신의 모든 희망을 걸고 살아가는 비실제적 세계관의 소유자인 화자가 한 해를 온통 설움 속에서 살아갈지라도 그의 봄은 결 코 절망뿐인 '슬픔의 봄'이 아니다. 왜냐하면, 계절의 순환 원리에 따라 봄은 또 올 것이고, 봄이 오면 모란은 또 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슬픔은 다만 모순 형용의 '찬란 한 슬픔'으로 언제까지나 그를 기다리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줄 뿐이다.
모란이 피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며 설움에 잠겨 있는 화자의 태도는 <끝없는 강물이 흐르 네>와 <내 마음을 아실 이>에서 보여 준 바 있는 '내 마음'의 세계를 한층 더 내밀화시키 는 것으로, 영랑으로 하여금 외부 사물과 역동적인 상호 작용을 취하지 못한 시 세계만을 펼쳐 보이게 하였으며, 결국 그의 시를 현실에서 멀어지게 한 주요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감상1>
1행; 봉우리져 있는 모란이 있고 그 모란이 필 때까지의 과정이 뇌리를 스친다.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
2행;'나'라는 한 사람이 나타나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현재의 봄이 아닌 자신만의 것인 자신만이 꿈꾸고 있는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다.
3행-4행; 모란이 하나 둘씩 떨어지고 그 때 '나'는 봄이 지나가 버린 것에 대해 아니 아직도 봄이란 것에 얽매여 있다. 그래서 봄이 가버렸기에 그 그리움과 슬픔 등에 차 있다.
5행; 오월에 아주 무덥던 날이 나타난다.
6행; 봄에 떨어진 꽃잎 마저 이 더움에 시들어 버리고 만다.
7행; 이렇게 떨어져서 시들어버린 모란은 언젠가 자취도 없이 없어졌다.
8행; 갑자기 자취도 없이 없어진 모란 때문에 무언가를 바라던 그리고 이루려던 것들이 모두 허물어져 버린다.
9행; 다시 3행으로 돌아가서 오면 즉, 모란이 지면서부터는 내 보람 같은 것도 다 무너져 버리기에 그 해도 희망 없이 살기에 한해는 다 가고 만 것이다.
10행; 이렇게 허무한 생활을 하며 너무 섭섭해서 펑펑 울고 있다.
11행; 모란이 피기까지의 그 모란에 '나'라는 인물이 자신의 모든 꿈과 희망들을 담아 보람있게 지내는 모습이 떠오른다.
12행; 나는 봄을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내 꿈과 희망들이 있는 찬란한 봄을 모란이 피면 한해가 가고 마는 슬픔의 봄을......
전체 감상
'나'는 모란을 피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망 같은 것들을 쏟아 붓는다. 하지만 모란은 봄이 펴서 지므로 무척이나 섭섭하고 허무하다. 이런 모란이라도 '나'는 모란이 피는 봄을 기다리고 있다.
모란이 핏기까지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테요.
♠아직 피어나지 않은 모란의 봉우리들이 한아름 보인다. 그리고 이런 모란의 곁에서 모란의 꽃이 피길 애타게 기다리는 어떤 이가 보인다. 모란이 피고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추위가 가시지 않은 듯 하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기다린다. 모란이 피는 봄을...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날 /나는 비로소 봄을여윈 설움에 잠길테요.
♠봄이 되어 모란은 피었다. 그러나 모란의 시기는 한순간뿐이었다. 모란은 얼마가지 않아 조금씩 지기 시작했고 그런 모란의 모습을 보면서 슬픔보다 더한 심정을 하고 있는 어떤 이이 모습이 보인다. 모란이 지는 것으로 보아 봄이 가고 있는 것 또한 느낄 수 있다.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 / 천지에 모란은 자치도 없어지고
♠하나 둘씩 떨어져 버린 모란꽃, 얼마안가 남아있던 꽃잎마저 시들시들 떨어져버려 무슨 나무인지 알아볼 수도 없는 가지만 남아있다. 완전히 봄이 가버린 셈이다.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으니
♠그는 봄을 애타게 기다렸지만 얼마가지 않아 져버리고 만다. 그가 기다렸던 시간들, 그의 기대감, 그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허망함, 허탈감이 느껴진다.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가고 말아 /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그렇게도 기다리던 봄이었지만 그 기다림에 비해 한순간에 가버린 봄. 그에게 있어서 다른 계절을 아무 의미가 없다. 그렇기에 너무나도 빨리 지나가 버린 봄이 아닐까? 슬픔이 감돈다. 상심해 있는 어떤 이의 모습이 보인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고 또 겨울이 지나면 그 언젠가는 모란이 필수 있는 봄이 다시 돌아온다. 그러기에 그는 다시 간절히 기다린다. 오랜 기다림에 비해 한순간 피는 모란이지만 아름다운 모란꽃을 보기 위해 꽃이 필 때까지 다시 그는 기다림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모란이 필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다. 기다림과 희망이 느껴진다.
<전체감상>
이시는 모란을 소재로 하고 있다. 모란은 꽃 중에 서도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름다운 꽃이다. 이 시의 전체 적인 내용은 누군가가 찬란한 아름다움을 지닌 모란을 보기 위해 봄을 끝없이 기다리는 마음, 또한 그런 기다림에 비해 너무나도 빨리 져버리는 모란에 대한 아쉬움과 허탈감,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속-즉 모란과 봄 속에는 작가가 말하고 싶은 다른 것이 있는 듯 하다.
여기서 봄--- 모란이 만발하는 계절, 이것은 작가가 지향하는 그만의 세계이다. 아니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이상향의 세계인 것이다. 이런 봄에는 모란이 핀다. 즉 그의 이상이 꽃을 피운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이다. 봄이라는 계절에만이 모란이 피듯 봄 같은 그의 이상향의 세계에서만이 그의 사상이 피어날 수 있기에 ....
그러나 아직 그의 봄이 아니다. 저버린 모란처럼 그의 이상과 소망도 져버린 상태이다. 그러기에 그의 사상을 펼치기 위해 그는 봄을 기다린다. 봄은 온다. 그러나 그의 소망과 이상을 펼칠 수 있는 봄은 너무나도 한순간뿐이다. 한순간의 찬란한 날들을 보내게 되지만 그 시기가 지나버리면 말할 수 없는 슬픔과 허망만이 찾아온다. 그러나 그런 찬란한 슬픔이 올지라도 그는 그의 봄을 계속 기다릴 것이고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1행-아직 봉오리인 모란이 보인다. 언제 필지 모르는 즉 정해지지 않는 기다림
2행-봄을 기다리는 마음. 봄의 이미지가 꿈, 희망, 님임을 알 수 있다. 간절한 소망
3행∼4행-모란이 떨어지고 봄이 가니 아쉬움과 서글픔.
5행∼6행-떨어지는 꽃잎이 시들었다. 남아있던 희망까지 없어져 버림.
7행∼9행-떨어져서 시드는 시든 모란을 보며 서운해하는 사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이 흐름
10행∼11행-또다시 모란 봉오리를 보며 기다리는...
〈전체 감상〉
① 시의 느낌은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조금은 슬프기까지 하다. 어떤 사람이 모란 봉오리를 보며 봄을 기다리고 모란 봉오리가 떨어지며 슬픔에 잠기고 다시 봄을 기다리는 모습이 그려진다. 봄이 모든 희망을 주는 것 같아 시에서 '봄이 온다, 봄을 기다린다'라는 말이 나오면 한없이 벅차 오르는 희망에 차지만,'봄이 간다, 모란이 진다'라고 하면 희망이 모두 없어지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특히 '모란이 지고 말면∼섭섭해 우옵내다.'에서는 모란이 지고 나서 격한 슬픔을 참을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 같다.마지막에 다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있을테지요.'에서 다시 희망,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느껴지는데 다음인'찬란한 슬픔의 봄을'에서 다시 모란이 피고 나서 지면 슬픔에 잠기지만 그래도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시속의 어떤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② 모란이 피고 지는 시기와 자신의 마음을 접목시켜, 같은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 같다. 봄을 희망, 꿈이라 한다면「지금은 실현하지 못했지만 꼭 실현하겠다」로, 봄을 님으로 한다면 「지금은 님이 떠나갔지만 언젠간 돌아올 것을 믿는다」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작가의 굳은 의지를 느낄 수 있다.
*모란이 핏기까지 계절의 변화가 있고 서서히 날이 따뜻해지고 있다.*겨울이 지나고 막 봄이 시작됐다. 뒷마당에 있는 오래된 모란 나무에 연둣빛의 새순이 아주 조금 나 있다 *파란 봉우리만 가지에 달려 있고 아직 꽃은 피지 않았다.
*추운 겨울이 조금 지나 이제 봄이 찾아오고 있지만 필자가 진정으로 바라는 모란이 필 그런 봄이 아직까지는 오지 않아서 필자는 간절히 자신이 바라는 봄을 기다리고 있다. *이 화자는 온통 파랗고 따뜻하고 포근한 어린 봄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까지도 그 봉우리가 터지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필자가 떨어지고 있는 모란 앞에 서서 슬픈 눈빛으로 떨어지는 모란을 바라보고 있다. *나만의 봄이 지나가고 있다는 걸 말하고 있다. *어는 정도 봄이 지나고 모란은 짧지만 화려했던 전성기가 지나고 힘없이 애처롭게 떨어지고 있다. *어느 날 꽃잎이 한잎 두잎 떨어졌다
*봄이 가버리고 필자는 슬픔에 잠긴다. 하지만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다. *이 화자는 모란이 다 떨어져 버린 온통 초록빛 색깔의 나무를 보며 모란이 졌으니 '이제 봄은 갔구나!'하면서 봄이 너무 짧은 것을 무척 서운해하고 있다. *벌써 꽃잎이 다 피고 지어버렸다. 너무나 서럽다.
햇볕이 내리쬐고 있다. 5월인 만큼 8월보다는 느낌이 강하지는 않지 만 매우 덥다. *여름이 온 봄은 완전히 가버린 그때를 말한다 *5월의 중순쯤 여름에 더 가까워져 약간은 무더운 날이다.
*봄에 떨어졌던 꽃이 그 햇볕에 의해 시들어 버렸고 필자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 생명이 다한 하얀 모란꽃이 땅에 떨어져 흙 색깔로 다 시들어 버렸다. *완전한 봄이 가버린 시점에서 주인공의 봄도 서서히 사라져 간다는 것. *그 정겹던 아늑한 시골마을의 모란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그냥 축 쳐져 땅에 떨어져 버린 모란 잎뿐이다
*날이 갈수록 시들어버린 모란 꽃잎마저 썩어 버리고 이제 모란은 보이지 않는다. *시들어 버린 꽃은 바람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자신만의 봄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한다
*모란이 없어지자 그토록 모란을 좋아했던 필자는 슬픔에 잠긴다. *시든 꽃마저 사라져 버린 걸 보는 화자는 한 순간의 허망함과 아쉬움에 가득 차 있다. *모란을 보면서 자신의 봄을 만들어 왔는데 모란이 지자 그 보람도 사라졌다. *간절히 봄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던 내 맘은 실망스러움으로 가득 찼다
*한 해가 가고 나면 허전하기만 하다 서운하고 섭섭하고... *모란은 피고 지면 그뿐이지만 자신이 봄동안 키워 온 꿈이 허무하다고 생각한다. *모란이 진 그 날부터 그 해가 끝나는 날까지 화자는 그 섭섭함을 잊지 못한다. *모란이 져서 봄이 간걸 섭섭해하고 있다
*모란이 기기까지 나는 기다릴 것이다 지금도...후에도... *다시 모란이 피는 봄이 올 때까지 화자는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주위는 온통 초록빛에 새하얀 모란이 피어있는 언제 올지 모르는 그 봄을... *또다시 자신만의 봄인 모란이 필 때까지 다음의 봄을 기다리겠다. 기쁜 마음으로...
--종합--
화자는 추운 겨울이 지나고 새하얀 모란이 핏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따뜻한 햇살이 비추기 시작하고 모란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화자는 이 모습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고 성취감 같은 것을 느낀다. 그렇지만 봄이 서서히 지나가면서 날도 더워지고 모란도 그 화려했던 전성기를 끝내고 점점 시들어 버렸다. 화자는 이걸 보면서 그 기뻤던 마음도 서서히 슬픔으로 변해가기 시작했고, 드디어 모란이 다 시들어 땅에 떨어져 자취도 없이 사라진 모습을 보고 화자는 절망에 빠진다. 삶의 의욕도 잃어버리고 봄을 보내버린 이 후의 생활은 모두 슬픔으로 가득 차게 된다. 화자는 그 슬픔 속에서도 다시 봄을 기다린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그 봄을...
북
자네 소리 하게 내 북을 잡지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엇모리 자진모리 휘몰이 보아
이렇게 숨결이 꼭 맞아서만 이룬 일이란
인생에 흔치 않어 어려운 일 시원한 일.
소리를 떠나서야 북은 오직 가죽일 뿐
헛 때리면 만갑(萬甲)*이도 숨을 고쳐 쉴밖에
장단(長短)을 친다는 말이 모자라오.
연창(演唱)을 살리는 반주(伴奏)쯤은 지나고,
북은 오히려 컨덕터*요.
떠받는 명고(名鼓)인데 잔가락을 온통 잊으오.
떡 궁! 동중정(動中靜)이오 소란 속에 고요 있어
인생이 가을같이 익어 가오.
자네 소리 하게 내 북을 치지.
* 만갑 : 조선 시대의 이름난 명창 송만갑을 뜻함.
* 컨덕터 : 지휘자(conductor).
(시집 {영랑 시집}, 1935)
이 시는 판소리의 연창과 북의 관계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판소리에 대한 영랑의 남다른 조 예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영랑의 고향 강진은 판소리의 고장이고, 영랑을 비롯한 {시문학}파 가 음악성을 중시했다는 점에서도 이 작품은 의미가 깊다. 전통 문화에 대한 영랑의 애정이 3, 4음보의 전통 가락과, 장단·완급의 다양한 변화, 북소리를 연상하게 하는 의성어 등과 잘 어울려 나타나 있다.
일반적으로 판소리에서 북을 반주를 위한 소도구 정도로 생각하기 쉬우나, 북 없이는 소리 가 이루어질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소리를 이끌어 가는 '컨덕터'가 될 정도로 북의 역 할은 지대하다. 일 고수 이 명창(一鼓手二名唱)란 말도 결국은 북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이르는 말이다. 물론 북도 소리가 없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소리를 떠나 서 북은 오직 가죽일 뿐'이며, 명창 송만갑도 북 없이는 그의 소리 예술을 이룰 수 없었다. 따라서 북은 소리에 종속되지 않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북으로써 소리는 예술로 승화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이와 같은 판소리에 있어 북의 지대한 역할을 보여 주는 한편, 소리와 북의 일치 에서 예술과 인생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북과 소리의 조화 속에서 소리 가 완성되고, 명창이 탄생되듯이 인생에 있어서 '이렇게 숨결이 꼭 맞아서만 이룬 일이란 / 흔치 않'음을 인식한 영랑은 마침내 북과 소리의 조화로 이루어진 소리 예술과 삶의 일체감 속에서 '인생이 가을같이 익어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오―메 단풍들것네
오―메 단풍들것네"
장광에 골붉은 감잎 날아와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메 단풍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잦이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메 단풍들것네"
1연 :향토적인 이미지의 느낌이 많이 든다. 구수한 사투리와 골 붉은 감잎에 놀라워하는 순수한 누이의 모습이 싱그럽다.
2연 :추석이 다가옴에 대한 설렘과 자람이 잦은데 대한 누이의 걱정이 나타나 있으며 그런 누이를 보는 오빠에게서 누이에 대한 사랑이 나타나 있다.
※향토적인 이미지와 구수한 사투리가 쓰여 서민적인 풍을 느끼게 하고 조금은 서정적인 느낌도 드는 시이다. '묽은'이라는 색채를 통해서 가을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고 감잎이 날아온다는 것으로 가을이 짙어 감을 표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계절의 변화에 대한 감탄, 신비감이 나타나고 있다. (가을의 아름다운 서정.)
* 1연: '오메 단풍 들것네'이 구절 하나만으로 가을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장독대에 울긋불긋 단풍든 감잎이 떨어지는 모습이 그려진다. 된장을 뜨러 나온 누이가 된장독에 떨어진 단풍든 감잎을 보며 새삼 가을이 다가왔음을 느낀다. '오매 단풍 들것네'는 누이의 그 마음을 표현한 듯하다. '아아, 가을이 오겠구나'
* 2연: 누이는 이제 가을이 왔으니, 추석도 다가오겠다는 생각을 한다.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이 구절은 '이제 바빠지겟구나' 할 일 많겠다'하고, 가을을 느끼기도 전에 현실을 걱정하는 듯하다. 이렇게 걱정하는 누이 앞에 '나'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나'를 한번 보게 함으로써 누이에게 마음의 여유를 찾으라고 한다. 여기서 '오매 단풍 들것네'는 누이에게 '가을이다'하고 상기 시켜주고, 가을을 느끼라고 한다.
** 전체적인 감상 **
가을이 오는 것에 사람들은 '이제 가을이다'하고 가을을 느끼기도 전에 바쁘게 일을 해야한다는 걱정에 앞선다. 이런 사람들에게 화자는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라고 하며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고 '순수 가을을 느껴라.','마음의 여유를 가져라.'를 사람들에게 상기시키려 한다. 여기서 '나'는 시적 화자이고 '누이'는 특정한 인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말한다.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내 마음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이 시는 영랑의 등단작이자 순수시라는 새로운 영역을 펼쳐보인 작품으로 원제목은 <동백 잎에 빛나는 마음>이다. 남도 사투리가 부드럽게 순화되어 예술적 미를 형성하고 있으며, 생기가 감도는 가락은 짙은 향토색과 감미로운 서정성을 느끼게 한다. 또한 동일 어구를 반 복함으로써 음악적 리듬을 부여하는 한편, 단순한 형식에서 오는 단조로움을 막아 주는 시 적 효과를 내고 있으며, 특히 의미상 3음보 율격의 시행을 4음보 시형식으로 배치함으로써 시인의 내적 충동과 외적 절제라는 이중성을 의도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원제목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시인은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동백잎을 보는 순간, 은빛으 로 출렁이는 강물을 바라볼 때와 같은 어떤 신비로움을 느낀 게 아닌가 한다. 일반적으로 영랑 시는 밖을 향해 시선이 열려 있는 외부 지향의 시가 아니라 외부 세계의 객관적 대상 을 '나'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내면 지향의 특징을 갖는다. 그런 탓으로 그의 시는 구체적인 체험 내용을 직접적으로 진술하기보다는 그것을 순간적으로 포착한 인상과 감흥을 드러내는 특성을 갖게 된다. 이 시도 역시 '내 마음'에 포착된 동백잎의 인상과 감흥을 '나' 안에서 즐 기고 만족하는 내면 지향의 시로 영랑의 정신 세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시인이 동백잎에서 발견한 황홀경은 객관적 실체가 아닌 안식과 평화의 세계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외부 세계와의 갈등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정을 구한 다음에야 얻을 수 있는 안식과 평화, '끝없는 강물'처럼 아름다운 그것은 다만 그의 '가슴엔 듯 눈엔 듯 핏줄엔 듯 /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에만 존재할 뿐이다. 물론 일제 치하라는 현 실 상황에서 영랑이 '끝없이' 추구했던 안식과 평화는 외부 세계와 철저히 단절된 '내 마음' 에서만 가능했으리라 짐작되기도 하지만, 결국 그는 자폐증 환자와도 같이 외부 세계로 통 하는 모든 문을 안에서 잠가 걸고 자기 내면 속에 침잠하여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며 폭압 의 어두운 시대를 가슴 졸이며 견뎌내었던 것이다.
<감상1>
1행: 길고 변함없는 나(작가)의 마음이 있다.
2행: 깨끗하고 잔잔한 강물이 내 마음에 흐르고 있는 것처럼 내 마음도 투명하고, 무언가가 영원히 흐른다.
3,4행: 작가의 마음이 강물처럼 빛을 받아 은빛을 낸다. 아침해가 비치는 강물의 잔잔한물결이 그려진다. 강물이 잔잔한 것처럼 작가의 마음도 어떤 동요도 없이 변함이 없다.
5행: 내 마음 어딘가에 흐르는 강물은 내 영혼과도 같아서 내면, 외면 모든 것에 반영된다. 강물이 내 마음에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가슴, 눈 핏줄에도 흐른다.
6행: 마음이 강물에 비유되는 것 같다. 나에 대한 모든 마음이 강물에 표현된다.
7행: 내 마음을 어디에 두고 있든 한편의 강물처럼 큰 동요됨이 없이 마음에 큰 변화가 없다. 8행: 내 마음에 항상 끝없는 강물이 흐른다는 것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깨끗하고 맑은 무언가가 항상 나와 함께 흐른다는 것 같다.
♤전체 감상♤ 이 시는 화자의 마음속에 흐르는 무엇을 강물처럼 표현한 것 같다.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잔잔히 아침해를 받아 빛을 낸다. 그 강물은 내 가슴, 핏줄, 눈에도 흐른다. 내 마음은 그 강물과 같다. 아마 그 강물은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이거나, 평화로운 내 환경에 대한 인식이거나. 사랑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 감상 2 >
여기서 작가는 강물을 매우 사랑하는 듯 하다. 실제 있는 강물이라기 보다는 내면의 고요함, 조용함, 평안함, 아름다움 같은 것을 강물로써 표현한 것 같다.
1행~2행: 세상의 고통, 힘겨움, 굴레에서 벗어나 마음의 안정을 찾는 화자를 연상케 한다. 여기서 강물은 실제 존재하는 강물이 아니라 내면적인 편안함을 나타내는 듯 하다. 화자는 일상의 피로에서 벗어나 마음의 안식을 느끼고 있다.
3행~4행: 아침에 해가 뜨기 시작할 때 강물 전체가 황금빛으로 빛나는 모습이 떠오른다. 이처럼 아름다운 평안이 마음속에 퍼져 나아감을 표현한 것 같다.
5행~6행: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어디라고 꼭 집어 말할 순 없지만 마음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곳이 편안한 상태임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마음이 안정된 상태임을 두드러지게 표현한 부분이다.
7행~8행: 1~2행을 반복하였다.
[전체적 감상]화자는 내면적인 행복을 소중히 생각하는 것 같다.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데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
이 시는 가정(假定)과 자문 자답의 형태로 자신을 알아 줄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표현한 작품이다. 잘 다듬어진 시어와 적절한 도치법의 사용으로 여성적 정감이 물씬 풍긴다.
이 작품의 주제는 그리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그의 내면 세계에 머물러 있는 안개와 같이 깔려 있다. (김소월, 한용운의 님과는 차이가 있음) 이 시는 외부 세계와 단절된 '내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타인과 함께 나눌 수 없는 세계 속에 고립되어 있는 안타까운 내 마음의 상태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 시는 음악성과 심상도 매우 중요시한 작품이다. 음악적 효과를 위하여 어떤 언어를 선택했으며 어떤 기법으로 심상화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1930년대 <시문학파>의 성격인 섬세한 언어 감각과 그윽한 서정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투명한 정서와 조탁(彫琢)된 시어, 음악성을 잘 드러나 있다.
▶성격 : 낭만적, 유미적, 서정적, 여성적
▶어조 : 여성적 호소의 어조
▶표현 : 비유와 상징
▶제재 : 내 마음
▶주제 : 미지의 임을 향한 간절한 그리움과 회의(懷疑)
김소월 이후 우리말 구사에 가장 탁월한 능력을 보인 김영랑은 "북도에 소월, 남도에 영랑" 이란 말에 어울리게 섬세하고 은은한 서정시의 극치를 이루었다. 그는 박용철과 함께 주도 한 {시문학}으로 KAPF 중심의 비문학적 정치주의를 배격하고, 20년대 중반부터 확산되어 오던 순수시의 서정 세계를 열어 놓았다. 시문학파가 주장한 순수시는 일체의 이념적·사회 적 관심을 배제하고 오직 섬세한 언어의 아름다움과 그윽한 서정성을 추구하는 시를 뜻한 다. 시문학파는 지나치게 개인의 내면 세계에만 빠져 역사 의식을 상실한 채 시어의 조탁에 만 열중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우리 시가 언어나 형식면에서 한 차원 높아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그들의 공적이라 하겠다.
교훈적 계몽이나 정치적 목적 의식을 버리고 언어의 기교와 순수한 서정을 중시한 영랑의 시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주제로 하여 여성적 화 자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남도 특유의 정서를 바탕으로 섬세한 시어를 구사하여 밝은 이 미지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기·승·전·결 형식의 네 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나의 마음을 알아 주실 임에게 간절한 그 리움과 슬픔이 응결된 결정체를 보배처럼 간직했다가 내어 드리겠다는 내용의 연가이다. 네 연의 짜임을 살펴 보면, '내 마음을 아실 이가 계시다면'이라는 첫째 연의 '가정(假定)'과, '보 배인 듯 그 마음을 드리겠다'는 그 가정에 대한 '응답'을 보여 주는 둘째 연에 이어, '꿈에서 라도 내 마음을 알아 줄 사람이 있다면' 하는 셋째 연의 '자문(自問)'에 이어 마지막 연에서 그 임은 자기의 사랑을 알지 못할 것이라며 추측에 의한 '결론'을 내려 버린다. 이런 가정과 응답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시 적 자아는 꿈에서라도 그런 임을 만나고 싶어하지만, 결국은 그것도 헛일이 되고, 그럴수록 그의 안타까움은 달아오르게 된다. 그러므로 시적 자아는 자신의 의식 세계에 고립되어 더 욱 고독해질 뿐이다. 이렇게 사랑을 밖으로 표현하지 못한 채, 속으로 감내하며 괴로워하는 시적 자아의 모습은 전통 의식 구조에 비추어 본다면 충분히 헤아릴 수 있지만, 내 마음을 아실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정을 내려 놓은 상태에서, 더구나 폐쇄시킨 자신의 의식 세 계는 열지 않으면서 자기 마음을 알아 주지 못한다며 임을 원망하는 것은 그야말로 지나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1연:
1행; 첫 문장의 표현에서부터 강한 정서적 느낌, 시적임이 물씬 느껴진다.
2행; 나의 마음을 나같이 아는 사람, 나를 완전히 이해하고 포용해 줄 수 있는 이'정도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3행; '그래도 어디나 계실 것이면'에서, 특히 '그래도'라는 시어에서 알 수 있듯이 나의 마음을 나 같이 아실 이가 드물겠지만 그래도 그런 존재가 있기를 바라는 지은이의 간절한 바램,소망등을 느낄 수 있다. 또,'∼면'으로 끝맺음을 하는 것으로 보아 다음 연에서 '∼이'에 대한 화자의 자세나 태도 등을 표현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2연;
1행; 여기에서의 '띠끌'은 때묻은 마음 즉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세속적인 욕심이나 시기, 질투 등 지은이 마음속의 좋지 못한 면을 의미하는 것 같다.
2,3행; '속임 없는','고이 맺는','이슬 같은'등의 시구에서 느낄 수 있듯이 2,3행에서는 주로 지은이 마음의 맑은면,착한면,즉 긍정적인 부분들을 표현한 것 같다.
4행; 지은이는 자신의 내면의 나쁜 면이든 좋은 면이든 간에 '내 마음을 아실 이'에게 모두 보여주고자 한다.
3연:
1행; 자신을 절대적으로 알고 이해해주는 이에 대한 그리움을 직접적으로 리얼하게 표현하고 있다.
2행; '내 마음을 날 같이 아실 이'를 반복하여 썼다. 화자의 '∼이'를 그리워하는 감정이 더욱 고조되었다.
3행;'지은이의 마음을 아는 이'는 분명 흔치 않다.
(1연) 지은이의 무엇인가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을 누군가가 알아주기 바라는 지은이의 모습이 느껴지고 그런 누군가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지은이의 모습 또한 느껴진다.
(2연) 그런 누군가에게 지은이는 이렇게 하고 싶어한다. 지은이의 마음에 담긴 아름다운 영상들, 가식 없는 지은이의 마음, 어두운 밤이 아닌 맑고 깨끗하게 느껴지는 푸른색의 밤에 맺히는 맑고 투명한 이슬처럼 거짓 없고 순수한 그런 지은이의 마음을 몰래 감추었다가 누군가에게 주려고 한다.
(3연) 그런데 그런 누군가가 지은이에게 아직은 나타나지 않은 것 같다. 누군가가 정말 필요하기에 그 누군가가 있어 그에게 해주고 싶어하는 지은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4연) '옥돌'이라는 깨끗하고 맑은 돌 위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을 나누겠지마는 그런 사랑은 단지 희미한 연기처럼 진실 되지 않고 지은이의 마음 또한 몰라주기만 한다.
(전체감상)
지은이는 누군가가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그 마음은 맑고 깨끗한 사랑인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지은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는 없나보다. 그래서 그렇게 자기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은 꿈에나 아득히 보인다라고 표현한 것 같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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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내용과 짜임새는 매우 단순하다. 두 연의 제1, 2행은 모두 `- 같이'로 되어 있고, 마지막 행들은 모두 `-고 싶다'로 되어 있다. 즉, 어떤 간절한 소망을 각각 두 가지의 직유를 써서 말한 것이 이 시의 내용이다. 그의 소망이란 `하늘을 우러르고(바라보고) 싶다'는 것뿐이다. 이런 단순한 소망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시가 되는지 독자는 물을 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기 전에 이 구절을 좀더 생각해 보자.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는 소망은 뒤집어 말하면 그가 현재 하늘을 마음대로 우러러보며 살고 있지 못함을 의미한다. 이 때 `하늘'은 그저 예사스런 하늘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땅과 대립되는 것으로서, 땅이 현실적인 생활의 세계를 의미한다면 하늘은 그로부터 벗어나 아무런 구속 없이 명상하고 마음을 쉴 수 있는 터전에 해당한다. 김영랑이 소망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명상과 평화의 생활이다. [해설: 김흥규]
*심상 : 시각적 심상
* 시어의 상징 의미
* 하늘 : 진선미(眞善美)의 근원이며 꿈과 기쁨이 담긴 원천으로, 소망하는
지순(至純)한 정신 세계를 상징한다.
* 제재 : 봄 하늘
* 주제 : ① 평화의 세계 소망
② 은은하고 고요한 삶에의 소망
③ 봄날의 애달픈 그리움
독을 차고
내 가슴에 독(毒)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毒) 그만 흩어 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毒)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毒) 안 차고 살아도 머지 않아 너 나 마주 가 버리면
억만 세대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한디!' 독(毒)은 차서 무엇 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디!'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마금날 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하여
▶ 성격 : 의지적, 직서적, 저항적, 상징적, 우의적
▶ 어조 : 결연한 남성적 어조
▶ 표현 : 주정적 정감의 직서적 표출
▶ 특징 : ① 상징에 의한 심상 ② 두 삶의 자세의 대조
▶ 제재 : 독(毒)
▶ 주제 : 순결한 삶의 의지. (식민지 현실에 대한 대결 의식과 삶의 의지)
1연 : 어떤 한 사람이 보인다. 그의 얼굴은 매우 결의에 차 있다. 아마 여기서 말하는 독이라는 것을 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런 무서운 독 같지는 않다. 벗은 그 사람에게 그 무서운 독 그만 버리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 독으로 인하여 벗도 다칠까봐서 이다. 여기서 이 사람이 독을 품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그 독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2연 : 벗이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독을 안 차고 살아도 우리가 죽으면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세상인데 무엇 하러 독을 차냐고 그것은 허무한 일이라고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세상은 분명 허무한 세상이다. 하지만 세상을 이렇게 비판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암담한 현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 시대는 일제 시대였던 것 같다. 즉, 일제 치하에서 그 사람은 모든 것을 억압 당하는데 분개한 나머지 독을 품었던 것 같다.
3연 : 하지만 여기서 다시 그 사람이 말을 하고 있다. 지은이가 태어나서 겪은 시대는 암울한 일제 시대였다. 그래서 그는 그 시대의 고통을 이런 게 표현하고 있다.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라고. 일제 치하에서 그는 하루하루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것을 알 수 있다. 갑자기 승냥이가 보인다. 승냥이는 그를 공격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저항하지 않는다. 오직 눈에 독을 가득 품은 채 자신의 몸을 승냥이에게 떠맡기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승냥이가 일제 자신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는 그런 일제에게 강력하게 저항하지 못한다. 다만 그런 짐승 같은 일제에게 "독"만을 품었을 뿐이다.
4연 : 그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겠다고 한다. 결국 그는 굳은 저항 의지를 표현한다. 독을 차고 선선히 가겠다. 그것은 곧 일제에게 독을 차고 나아가겠단 말 같다. 지금까지의 소극적인 저항보다는 보다 적극적으로 저항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단지 막음 날 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해서이다. 왜 혼이 외로운 것일까? 아마 민족이 없어지기 때문, 나라가 없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자신, 또는 동포들이 그러한 외로운 혼 처지를 면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은 보다 적극적으로 저항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1연 ☞ 가슴에 응어리(한)등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 응어리는 새로 뽑은 독이 제일 강하듯 큰 것 같다. 주위 친구들이 그 마음을 그만 지우라고 권유하지만 그 사람은 뿌리 치고 있다.
2연 ☞ 응어리 짓지 않고도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 자연히 그 근본적 인 문제점이 작게 느껴질 것이라고 충고하는 벗의 모습이 그려진다.
3연☞ 이리, 승냥이에게 고통받고 있는 현실에 불만을 느끼고 있다. 여기에 서 응어리진 마음이 이리, 승냥이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4연 ☞ 이리, 승냥이의 밥이 되어 빨리 죽기보다는 독을 쳐서 그들에게 저항 하겠다하는 지은이의 다짐(의지)을 볼 수 있었다.
<전체적 느낌>
화자는 오래 전부터 어떤 것에 독(한)을 품어왔다.즉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아무에게도 아직 해를 입힌 적 없다. 한은 품었지만 나쁜 이는 아니다. 오히려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충고해주는 벗! 한은 세월이 흐르면 사그라진다고 화자는 세상에 태어난 것을 원망했다. 왜?...이 글의 이리, 승냥이가 화자의 마음을 노리는 것으로 보아, 이리 승냥이는 세상의 악 그리고 화자의 마음은 너무나 순수한, 순수성으로 보인다.악에 찌들리고 사느니 차라리 순수함을 독을 지님으로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춘향
큰 칼 쓰고 옥(獄)에 든 춘향(春香)이는
제 마음이 그리도 독했던가 눌래었다.
성문이 부서져도 이 악물고
사또를 노려보던 교만한 눈
옛날 성학사 박팽년이
오불지짐에도 태연하였음을 알았었니라.
오! 일편단심(一片丹心).
원통코 독한 마음 잠과 꿈을 이뤘으랴
옥방(獄房) 첫날밤은 길고도 무서워라.
서름이 사무치고 지쳐 쓰러지면
남강의 외론 혼(魂)은 불리어 나왔느니
논개! 어린 춘향을 꼭 안아
밤새워 마음과 살을 어르만지다.
오! 일편단심(一片丹心).
사랑이 무엇이기
정절(貞節)이 무엇이기
그 때문에 꽃의 춘향 그만 옥사(獄死)한단말까
지네 구렁이 같은 변학도의
흉칙한 얼굴에 까무러쳐도
어린 가슴 달큼히 지켜주는 도련님 생각
오! 일편단심(一片丹心).
상하고 멍든 자리 마디마디 문지르며
눈물은 차고 남은 간을 젖어 내렸다.
버들잎이 창살에 선뜻 스치는 날도
도련님 말방울 소리는 아니 들렸다.
삼경(三更)을 세오다가 그는 고만 단장(斷腸)하다.
두견이 울어 두견이 울어 남원(南原) 고을도 깨어지고
오! 일편단심(一片丹心).
깊은 겨울밤 비바람은 우루루루
피칠 해 논 옥창살을 들이치는데
옥 죽음한 원귀들이 구석구석에 휙휙 울어
청절 춘향도 혼을 잃고 몸을 버렸다.
밤새도록 까무러치고
해돋을 녘 깨어나다
오! 일편단심(一片丹心).
믿고 바라고 눈 아프게 보고 싶던 도련님이
죽기전에 와 주셨다. 춘향은 살았구나
쑥대머리 귀신 얼굴된 춘향이 보고
이도령은 자인스레 웃었다. 저 때문의 정절이 자랑스러워
'우리집이 팍 망해서 상거지가 되었지야'
틀림없는 도련님 춘향은 원망도 안했니라! 일편단심(一片丹心).
모진 춘향이 그 밤 새벽에 또 까무러쳐서는
영 다시 깨어나진 못했었다. 두견은 울었건만
도련님 다시 뵈어 한을 풀었으나 살아날 가망은 아주 끊기고
온몸 푸른 맥도 홱 풀려 버렸을 법
출도 끝에 어사는 춘향의 몸을 거두며 울다
'내 변가보다 자인 무지하여 춘향을 죽였구나'
오! 일편단심(一片丹心).
영랑이 그 동안 일관되게 고집해 오던 '내 마음'의 서정 세계를 버리고 현실 세계로 방향을 돌리게 된 때는 1930년대 말엽으로서 일제의 한민족 말살 정책이 극에 달했던 시기이다. 이 시는 <독을 차고>와 함께 그 같은 영랑의 변화를 한눈에 알게 해 주는 작품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일편 단심을 지키는 춘향의 애틋한 정절을 세조의 불의(不義)에 맞서 죽음으로 충 절을 지킨 사육신과, 촉석루에서 순국(殉國)한 의기(義妓) 논개의 우국(憂國)에 대응시켜 노래하고 있다. 작품의 발표 시기가 1940년인 것을 고려하면, 이 시의 창작 의도가 단순히 춘 향의 사랑과 정절만을 예찬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잊혀진 역사와 문화를 노래함으로써 식민지 치하에서 신음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는 적극적 의 미가 숨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와 함께 가사나 민요에 바탕을 둔 정형적 운율로써 순수 서정 세계만을 펼쳐 보인 초기시에 비해, 이 작품은 자유율을 구사하여 시의 산문화(散文化)라는 표현의 변화뿐 아니라, 제재면에서도 개인적인 문제로 국한되었던 편협한 시각을 벗어나 역사와 문화로 확대된 다양 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 감상 >
1연 : 변사또의 수청을 거절하고 칼을 쓰고 옥에 든 춘향이의 모습이 보입니다. 춘향이 자신도 자기의 마음이 그렇게 독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놀람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도령을 향한 마음, 이도령을 향한 일편단심 하나만으로 온갖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큰 지조와 절개가 느껴집니다. 춘향이는 사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성산문과 박팽년이 오불지짐에도 태연하였음을 기억하며 오늘도 컴컴한 옥안에서 도련님을 기다립니다.
2연 : 춘향이는 너무나 무섭습니다. 옥방 첫날밤의 어둡고 긴 적막감을 극복해내는 일이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서러워서, 원통해서 잠을 이룰 수조차 없습니다. 하지만 춘향이는 논개를 생각하며 자기를 달랩니다.
3연 : 사랑이 무엇이기에, 정절이 무엇이기에 꽃같은 춘향이는 옥사해야 한단 말인가요? 지네, 구렁이 같은 변사또의 흉칙한 얼굴에 까무러쳐도 춘향이는 도련님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오늘도 살아있습니다.
4연 : 춘향이는 상하고 멍든 자리 마디마디 문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도련님은 오지 않으십니다. 도련님을 기다리다가 지쳐 거꾸러져도 두견새의 한의 소리가 남원 고을에 울려 퍼져도 일편단심은 변하지 않습니다.
<<느낌>>
이 시는 춘향이에 대해 설명하듯이 춘향의 심정들을 잘 묘사해 넣고 있습니다. 춘향전 중에서 춘향과 이도령이 사랑을 나누는 앞, 뒤 부분은 생략되고 중간 부분 즉, 춘향이가 변학도의 수청을 거절하고 갖은 혹사를 당하는 부분만 간추려 시화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 '춘향'이란 시는 김영랑의 여는 시와는 달리 자유로운 느낌이 듭니다. 저의 조는 이 시의 춘향이를 시인 김영랑의 입장에서 관찰해 보았습니다. 김영랑은 3·1 운동 직후 옥고를 치른 적이 있는데, 그 때의 기분을 소재로 시를 쓴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1연에서는 조국에 대한 일편단심을 성학사, 박팽년의 오불지짐의 고통과 비교하며 그 고통(일제의 억압)의 정도를 설명하려는 것 �습니다.
2연은 그 마음의 고통을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다고 생각하는 논개를 끌어들여 시인의 고통을 덜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3연에서는 사랑; 조국애, 정절; 정의(올바른 일),지네 구렁이 같은 변학도; 일에 시대 일본 군병·지도층, 도련님; 우리 조국 광복 등에 대응시켜 표현한 것 같습니다.
4연에서는 아픈 몸을 어루만지며 조국의 광복을 간절히 기다리는 시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에 슬퍼하는 시인의 모습도 보입니다.
긱 연마다 반복되는 시구 '오! 일편단심'은 시인의 마음을 더욱 단호하게 하기 위해 다짐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